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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89) 사리불 존자의 조카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4. 9. 3.

<법구경(89) 사리불 존자의 조카 이야기>

 

<청주 보살사>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사리불 존자의 조카와 관련하여 게송 107번을 설법하셨다.

어느 날 사리불 존자는 자기 조카에게

어떤 공덕행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기를 자신은 불을 숭배하는 스승에게 염

소를 희생시켜 매달 제사를 올리며,
그것으로써 사후에 브라흐마 천(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사리불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네 스승은 자기 자신도 브라흐마 천에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곳에 태어나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
그는 너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있을 뿐이다.”

사리불 존자는 곧 조카를 부처님께 데리고 갔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브라흐마 천에 태어날 수 있는

진리를 가르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젊은 브라흐민이여,

수도원에서 일념으로 마음 집중을 수행하고 있는 비구를

잠시 방문하여 예배를 올리는 것이
불을 숭배하면서 그 신에게 백 년 동안 제사를 올리는 것보다 수승하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백 년 동안 숲 속에서

불의 신을 숭배하는 것보다
백 년 동안 제사지내는 것보다
한 순간 마음 집중을 수행하는 비구를 찾아가
예배 올리는 것이 훨씬 낫다.


이 설법 끝에 사리불 존자의 조카는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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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라나시의 목욕 의식과 푸자 의식

 

인도 성지 순례 때 "바라나시"라는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 사람들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살아 생전에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에 와서 목욕을 하고
죽어서는 갠지스 강변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을 갠지스 강에 흘러보내는 것을 일생의 소원으로 여깁니다.
 
바라나시에 갔을 때 새벽에 배를 타고

갠지스 강을 따라 올라가며 
일출이 되기를 기다리며 차디찬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많은 인도인들을 보았습니다.

 
야밤에는 갠지스 강변에 밝은 등불을 밝히고

춤과 노래로 강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푸자 의식을 행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목욕 장면이나 푸자 의식이나 모두 볼만한 구경거리였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태어나신 유서깊은 인도 땅에서

아직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도인들에게 녹아들지 못하고
목욕과 제사를 통해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강렬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착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라나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바라나시만큼 오래된 것이 인도인들의 신에 대한 제사 의식입니다.


당시 제가 보았던 제사 의식(푸자 의식)에는

동물을 도살하는 의식은 없었지만,
부처님 당대에는 신을 기뻐게 하기 위한 공양물로

동물을 도살하는 희생제가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살아있는 인간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지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이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2. 잘못된 제사 의식
 

부처님은 동물이나 사람을 희생시키며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이렇게 타이르셨습니다.


"생명이란 누구나 뺏을 수는 있지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며 지키려 애쓰는데,
비록 하찮아 보이는 미물에게도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니 생명을 죽여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제발 그만두라."
  
지금 생각하면 제물을 신에게 바친다며 

동물이나 인간을 도살하는 모습은
야만적이고 무지하게 느껴지만 

당시에는 보편적 상식이었고 문화적 전통이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부처님의 말씀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비로운 말씀인듯 하지만
당시로 보자면 인도 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문화적 전통에 대한 위험천만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생명을 희생하며

제사를 지내는 의식에 정면으로 대응하셨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자비심의 발로였기도 하셨지만
부처님은 바른 견해에 대해서는 눈감지 않는

용기를 가지신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단순히 생명을 죽이는

제사 의식에 대해서만 반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복락과 재앙이 신에 대한 제사로

결정된다는 당시의 전통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입장이셨습니다.
  
수다원 과에 오르기 위해

극복해 내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미신적인 제사 의례,

터부(금기)에 대한 집착이 있느냐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신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가 자신에게 복락과 재앙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을 주는 것도 재앙을 주는 것도

자신의 행위에 따른 인과라는 것을 믿는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인과법)에 의지를 하므로 

자신의 마음이 결코 제사에 요동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복락과 재앙이 제사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고히 믿기 때문입니다.

 

"불을 숭배하면서

신에게 백 년 동안 제사를 올리는 것보다
일념으로 마음 집중을 수행하고 있는 비구를

잠시 방문하여 예배를 올리는 것이 훨씬 낫다."
 
<법구경>의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너는 자신의 복락과 재앙은 무엇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느냐? 

 

제사에 의해 마음이 요동치지 않을 정도로

부처님의 인과법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을 묻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