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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52) - 인도의 전륜성왕 아쇼카 대왕(1) - 권력욕

by 아미타온 2024. 9. 5.

<불교 인물사(52) - 인도의 전륜성왕 아쇼카 대왕(1) -  권력욕>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상>

 

1. 인도의 전륜성왕, 아쇼카 대왕

 

절에서 불상을 보면 보살님들은

대부분 보관을 쓴 제왕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승 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의 모델인 보살은

출가하여 혼자만의 각성을 위해 노력하는 수행자가 아닙니다.

 

중생들과 함께 하며 정법과 자비의 힘으로 

중생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의 모습이 대승 보살의 모습입니다.

 

보살은 중생들을 해탈로 이끌 수 있는 법의 안목도 구비해야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중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익을 줄 수 있는 유능함과

중생들을 이끌 수 있는 권위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법으로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의 권능의 상징이

보관을 쓴 제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보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에서는 제왕 중의 제왕을 "전륜성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전륜성왕은 금륜보(金輪寶),상보(象寶),마보(馬寶),

주병보(主兵寶),신주보(神柱寶), 거사보(居士寶),옥녀보(玉女寶)

일곱 가지 보물을 가진 이상적인 왕이라고 합니다.

 

권위와 군사력,신하,보배,미녀로 대표되는

권능과 재물을 가지고 

정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왕 중의 제왕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출생하셨을 때

아시타 선인이 부처님의 관상을 보고

출가하지 않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도인들이 그 출현을 고대할 정도로

전륜성왕은 바른 통치 철학을 가지고 

백성들을 훙륭하게 다스리는 제왕입니다

 

불교 역사상 전륜성왕으로 칭송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쇼카 대왕입니다.

 

보살적 삶을 추구함에 있어

법에 대한 공부도 중요한 측면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법을 어떻게 구현해나가고

중생들에게 유익을 주는 리더가 될 것인가에 대한 사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간부터는 '전륜성왕'이라고 칭해지는

아쇼카 대왕의 삶과 통치철학

백성들을 다스렸던 방식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정법에 입각한 권능을 갖춘 정치적 리더로서

보살의 삶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마우리아 왕조때 아쇼카왕이 통일한 영토 및 주요 유적지 >

 

2.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 대왕(BC 268 - BC232)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왕입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한지 약 250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마우리아 왕조는 기원전 317년 경에 건국되어

기원전 180년 경에 멸망한 고대 인도 왕조입니다.

 

찬드라굽타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아쇼카 대왕 때 전성기를 맞아

남인도를 제외한 인도 대륙 전역을 통일했습니다.

 

그러나, 아쇼카 대왕 사후 분열되었고

기원전 2세기 말에 숭가 왕조의 발흥으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인도 북부 갠지스강 유역의 

16개국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왕국은 마가다 국이었습니다.

 

마가다국은 아자투삿투왕 때 갠지스강 유역을 통일하고

이후에는 난다 왕조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찬드라굽타가 군사를 일으켜

기원전 317년 마가다국 난다 왕조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오늘날 파트나)를 점령하고 

마가다국을 멸망시켜 마우리아 왕조를 세웁니다.

 

갠지스 강 유역의 지배를 확립한 찬드라 굽타는

영토 확장을 위해 인더스 강 방면의 제압에 나섰습니다

.

당시 인더스 강 유역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침공으로 그리스 인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23년에 사망한 후

그가 임명했던 총독인 셀레우코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305년 찬드라굽타는 병력을 동원하여

셀레우코스와 싸워 그를 인더스강 유역에서 몰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인더스 강 유역부터 박트리아 남부에 이르는 지역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부)의 지배권을 인정받았습니다.

 

기원전 293년 찬드라굽타가 죽자 그의 아들 빈두사라가 왕이 되었습니다.

 

빈두사라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 확장 정책을 펼쳐

당시에 "적의 살육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16개 도시의 왕과 귀족을 무너뜨리고

데칸 고원을 넘어서 인도의 동해인 아라비아 해와

서해인 뱅골만까지 북인도의 대부분으로 마우리아 왕조의 세력을 넓힌 왕이었습니다.

 

< 녹야원에 세워진 유명한 아쇼카 대왕 석주의 4마리 사자상 >

 

3. 아쇼카 대왕의 권력욕과 왕위 찬탈

 

빈두사라왕은 기원전 268년 경에 죽었습니다.

그는 16명의 왕비로부터 101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쇼카 왕자는 빈두사라 왕과 직급이 낮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정치적 야망이 큰 왕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오늘날 파키스탄 영토인 간다라 지방의

탁실라(Taxila)에서 총독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빈두사라 왕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수도인 파탈리푸트라(오늘날 파트나)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아쇼카는 치열한 왕위 계승 경쟁 속에 

경쟁자인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99명의 형제들을 죽이고

아쇼카 대왕은 대관식을 거행하였다고 합니다.

 

왕이 된 아쇼카 대왕은 이후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고

숙청을 계속하며 통치 체제를 굳혀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인도 통일을 위한 정복 전쟁을 꾸준히 펼쳐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