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52) - 인도의 전륜성왕 아쇼카 대왕(2) - 발심>
1. 칼링가 왕국 정복
아쇼카 대왕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권력에 대한 집착과 함께
마우리아 제국의 권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우리아 제국에 굴복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잔인한 정복 전쟁을 벌렸습니다.
인도를 마우리아 제국의 통치 아래
통일하려는 열망이 강했던 왕이었던 것입니다.
만리장성을 쌓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와 비견되는
권력욕과 정복욕을 가졌던 왕이었습니다.
당시 마우리아 왕조의 통치에
가장 강하게 저항하던 나라는 칼링가 왕국이었습니다.
칼링가 왕국은 인도 동쪽 뱅골만의 해안에 위치한
현재의 인도 오리싸(Orissa)주에 있던 나라였습니다.
칼링가 왕국은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마우리아 왕조의 통치를 거부하고
아쇼카 대왕의 권위를 경멸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칼링가 왕국는 그리스 문헌에 의하면
나라 크기는 작지만 매우 강력한 군대를 가진 독립 왕국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왕국과의 교역을 통해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여
아쇼카 대왕으로서는 전인도 통일을 위하여 공략을 해야할 왕국이었습니다.
아쇼카 대왕은 칼링가 왕국에 대해서 무자비한 침략에 착수하였습니다.
그 때는 아쇼카 대왕이 즉위하고 약 10년 후인 BC261년의 일이었습니다.
칼링가 왕국의 저항은 생각보다 상당히 강했습니다.
아쇼카 대왕은 정복 과정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닥치는대로 칼링가 왕국을 무참하게 살육하였습니다.
이 처절한 상황에 대해서 아쇼카는 후일 그의 비문에서
10만명의 사람들을 전쟁의 과정에서 살해하고
약 15만명의 사람들이 부상당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2. 발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쇼카는 죽은 시체들로
널부르진 전장터를 유유히 걸어가다가,
별안간 아쇼카 대왕의 가슴에는 알수 없는
공포와 회한의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번민 속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은채
다음과 같이 고뇌하였습니다.
"보라!
이 비참한 주검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그들의 소중한 목숨을 바쳤는가?
정의! 진리! 법!
과연 이런 것들이 그들의 목숨을 내던지게 만들었는가?
군인들은 그들의 의무 때문에
이렇게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그러나, 분노한 나의 병사들의 눈먼 창칼 아래
이유없이 목숨을 잃어버린 뭇 백성들은
과연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나 했겠는가?
그들의 눈에 비친 전쟁은 단지 위정자들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한 방편이었을 뿐이리!
정의와 법을 내세우는 모든 전쟁의 실체는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의 굴레일뿐,
백성들은 오직 생존만이 목적이며
오직 그것을 위해 몸부림칠 뿐이로다!"
이와 같은 후회를 한 아쇼카왕은 다음과 같이 발심을 합니다.
"칼링가를 정복하면서
나는 결코 돌이킬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들의 영토가 수많은 시체로 덮인
처참한 광경을 보며 나의 가슴은 찢어지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칼링가에서 살해당하고 부상당한 사람들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만이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나의 가슴은 무거운 슬픔으로 짓눌릴 것이다.
앞으로 나는 오직 진리에 맞는 법만을
실천하고 가르칠 것이다.
나는 오직 진리의 법에 의한 승리만이
최상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3. 주의 깊음과 계율
아쇼카 대왕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짠다쏘까(사악한 아쇼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아쇼카왕이 어떻게 전쟁을 통해
발심을 하게 되었을까요?
불경 중에 <아육왕전> 이라는 경전이 전하는데,
그의 불교 귀의에 대한 스토리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
아쇼카왕은 왕실의 관습에 따라서
브라만 사제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정기적으로 보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브라만 사제들의 탐욕을 보고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던 그가
어느 날 12살 가량의 행자가 조용히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여법하고 절제된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행자를
예사롭지 않은 인물로 생각하고
궁중으로 초대하여 공양을 올리고자 하였다.
이 어린 사미승은 <니그로다>라는 이름의 사미였다.
아쇼카 대왕의 설법 요청을 들은 니그로다 사미는
〈법구경〉에 나오는 ‘열반으로 가는 길과 윤회로 가는 길’을 설해 주었다.
설법의 내용은
“주의 깊음은 열반으로 가는 길이다.
주의 깊지 않음은 윤회로 가는 길이다.
주의 깊은 사람은 윤회에 얽매이지 않는다.
주의 깊지 않은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라는
<법구경>의 가르침을 해설한 것이었다.
여기서 ‘주의 깊음’이란 도덕적 행동
즉, 계행을 지키는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니그로다 사미는 모범적인 계행,
가르침의 정확한 이해, 설득력 있는 설법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을 듣게 된 아쇼카 대왕은
마음으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
비록 권력에 대한 집착과
제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아쇼카 대왕이었지만,
칼링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불법의 가르침과 접한 후에
바른 삶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하는 태도를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비참한 전쟁의 와중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
전쟁과는 무관한 민간인과 가축들의 살상의 현장을 보고
자신의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얼마나 수많은 생명이 죽는가를 주의깊게 통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불교의 제1계율의 의미를 깨닫고 발심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비극이 아쇼카 대왕에게 있어서
관념적인 공허한 기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하고도 지속적인 인상으로 남아 새롭게 발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쇼카 대왕은 당시에 목격했던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을 슬퍼하여 무력에 의한 정치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참된 정복과 정치란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르마(법)에 의한 정복’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살인자 앙굴리마라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권력욕에 불타는 집착의 화신이 아니라
바른 법에 의한 통치를 기반으로 삼는 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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