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12) - 아미타경>
1. 정토신앙의 반야심경, 아미타경
<아미타경>은 <무량수경>에 비해 많이 짧은 경전입니다.
그래서, <소경(小經)>으로 불리고, 독송용으로 많이 애용됩니다.
저도 초창기에 기도할 때 <아미타경>을 자주 독송하며 기도했습니다.
짧고 독송하기 좋은 정토 경전이라서
<무량수경>보다 훨씬 감성적으로 친근한 경전이 바로 <아미타경>입니다.
<아미타경>의 범어 제목도 <무량수경>과 같습니다.
'수카와티(Shukavati,극락)' + '위루화(vyuha, 꾸민다, 장엄하다)' +
'수트라(sutra,경전)' 입니다.
극락 세계를 장엄하는 경전' 즉 <극락장엄경>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무량수경>을 축약하여
핵심만 드러낸 경전을 <아미타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반야경>을 축약하여 핵심을 드러낸 경전이 <반야심경>인 것처럼 말입니다.
정토 신앙의 <반야심경>이자 <천수경>이 바로 <아미타경>입니다.
2. 극락과 오탁악세
우리가 주로 독송하는 <아미타경>은 구마라집 법사의 번역본입니다.
중국 서안(장안) 종남산 초당사에서 구마라집 법사의 사리탑을 친견한 적이 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지극한 행복의 정토'라는 뜻의
'극락(極樂)'이라는 용어를
<아미타경>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전란의 와중에 중국에 끌려와
굴절된 인생을 살아야 했던 구마라집 법사는
극락과는 거리가 먼 오탁악세의 힘든 한 생을 사셔야 했습니다.
<아미타경>에는 오탁악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대가 탁하고(겁탁),
중생들의 견해가 탁하고(견탁),
탐진치의 번뇌가 탁하고(번뇌탁),
중생들의 근기가 탁하고(중생탁),
수명이 탁한(명탁) 세상이 5탁 악세입니다.
5탁 악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미타경>을 설하는 것은 진실로 희유하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탁악세를 살아가면서
<아미타경>을 통해 우리에게 극락왕생의 길을
설해 주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3. 극락 찬탄
아미타 부처님의 제 17대원은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이 극락 세계의 수승함을 칭송하며
극락 세계를 널리 알려주지 않는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입니다.
제 17대원의 성취에 의해 동서남북 상하의 모든 부처님들이
극락 정토와 아미타 부처님을 찬탄하고 계시며,
<아미타경>에서는 이 모든 부처님들께서 찬탄하시는 극락 정토에
반드시 왕생하려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 <아미타경>의 말씀 속에는 <아미타경>을 번역한
구마라집 법사의 진심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머리에 한 몸통을 갖고 어르렁거리는 공명조마저도
극락에서는 극락조가 되어 법음을 설하고 있다는 극락 세계의 공덕 장엄은
구마라집 법사가 진실로 태어나기를 원했던 세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극락 공덕 장엄
<아미타경>을 독송하면 "기불국토 성취여시 공덕장엄"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극락세계는 이와 같은 공덕 장엄이 성취되어 있다"는 뜻인데,
나는 특히 두 가지의 극락 세계 공덕 장엄이 환희롭게 느껴집니다.
첫째는 극락에 태어나면 신족통을 구족하여
아침마다 시방 세계의 부처님 세계를 여행하면서
극락의 화려한 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며 법문을 듣고
다시 극락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수행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절에 가면 많은 도량에서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오감으로 직접 보는 배움과 감성을 통해 인식을 확장해 나가듯
극락 또한 극락이 허브가 되어 이러한 싱그러운 공부를 해서 좋습니다.
둘째는 극락에 태어난 존재들은 모두 불퇴전에 도달한 존재들로
수많은 착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덕 장엄의 불국토라고 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항상 모시고, 수많은 보살님들이 계시고,
불퇴전에 도달한 존재들을 도반으로 삼아 공부할 수 있는 국토라서
우리의 공부방처럼 도반들과 함께 공부해 나갈 수 있는 국토라서 좋습니다.
5. 염불 공덕
<아미타경>에서는 작은 선근 복덕으로는 극락에 태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큰 선근 공덕은 무엇인가요?
바로 '염불'입니다.
<아미타경>에서는 '집지명호 일심불란(執持名號 一心不亂)'이라고 했습니다.
즉,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받아 지니고,
한마음으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염불은 정토 신앙의 '선근(善根)'을 기르는 행위입니다.
생각생각 선한 생각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염염상속(念念相續)의
의식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갖는 것이 '선근을 기른다'는 바른 의미입니다.
<아미타경>에서도 '하루, 이틀, 삼일, 사일, 오일, 육일, 칠일 이라도 일심불란하여
집지명호를 하면 임종시에 반드시 아미타 부처님께서 맞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집지명호 일심불란'을 단순히 잡념없이 염불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선근을 증장시키는 염불을 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는 염불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을 착하게 선근을 증장시키는 염불,
내 마음의 도량을 청정하게 만드는 염불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효 스님은 <아미타경소>에서
극락 왕생의 정인(正因)은 '보리심'인 것이고,
조인(助因)이 '염불'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보리심에 바탕을 둔 염염상속의 선근을 증장시키는 염불이야말로
큰 선근 복덕의 인연이기 때문입니다.
재미난 것은 현장 법사도 <아미타경>을 번역했습니다.
현장 법사는 '일심불란'이 아니라 '일심계념(一心繫念)'으로 번역했습니다.
여기서 '계'자는 묶을 '계(繫)'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한마음으로 생각생각 묶어 둔다는 뜻인데,
염염상속의 선근을 증장시키는 염불의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5. 나무아미타불
우리 나라는 정토삼부경 중에서 <아미타경>을 중시합니다.
가장 짧고 핵심을 담고 있는 정토 경전이면서도
'집지명호 일심불란'의 지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6자명호는 정토 신앙의 정수와 같습니다.
나를 버리고 오롯히 아미타 부처님의 이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를 버리고 남는 한 소리가 '나무아미타불'이 되어야 합니다.
동국대 김호성 교수가 쓴 <거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염불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입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도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바로 그 때
그도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오래고 오랜 시간을 다 건너뛰고
멀고도 먼 공간을 다 건너뛰어서
그와 나는 하나의 거울 속에서
그는 그가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이 시에서 '그'는 '아미타 부처님'이시고,
'나'는 '나'입니다.
'나무아미타불' 6자 속에서
'나'와 '아미타 부처님'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염불.
그 염불이야말로 큰 선근 복덕의 염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아미타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아미타불(14) 관무량수경과 선도 대사 (4) | 2024.10.06 |
---|---|
나무아미타불(13) - 관무량수경 (1) | 2024.10.01 |
나무아미타불(10) - 왕생론과 오념문 (1) | 2024.09.23 |
나무아미타불(8) - 무량수경과 왕생론 (1) | 2024.09.15 |
나무아미타불(7) - 아미타 부처님의 48대원과 무량수경 (4)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