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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

불교 인물사(61) - 인도 신불교의 아버지 암베드카르(7) - 불교관

by 아미타온 2024. 10. 29.

<불교 인물사(61) - 인도 신불교의 아버지 암베드카르(7) - 불교관>

 

< 1956년 암베드카르와 그 지지자들의 집단 불교 개종식 장면 그림 >

 

1. 용기와 자부심

 

간디는 불가촉천민 문제 해결을 힌두교의 동정과 참회에 의탁하려 했습니다.

 

반면 암베드카르는 카스트 제도의 폐기에 의해서,

그리고, 불가촉천민 자신의 자각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불행한 계층이 자신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을 자각하고

오랜 타성과 무기력으로부터 탈피하여 그들 자신들의 힘으로

불의와 싸워 나갈 것을 최초로 강조한 사람이 암베드카르였던 것입니다.

 

그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자부심을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투쟁은 언제나 나에게 야릇한 희열을 안겨줍니다.

압제자들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그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해서

박탈당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굴의 투지로 끈질긴 투쟁을 벌려야만 그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부심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부심 없는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자부심을 잃고 살아가는 것,

그 이상으로 굴욕적인 삶은 없습니다.

이 세상 한복판에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십시요."

 

강한 용기와 자부심을 가진 암베드카르는

힌두교의 체제에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공양>

 

2. 힌두교와의 결별

 

1931년에 암베드카르는 마누법전을 불태우고,

1935년에는 힌두교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그는 힌두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힌두교의 핵심은 불공평입니다.

불가촉천민에게는 힌두교가 합법적인 공포의 연옥입니다.

‘카스트’라는 철칙, ‘카르마’라는 냉혹한 법,

그리고 태생에 의해 신분을 결정하는 몰지각한 신분법,

이 모든 것들이 힌두교가 불가촉천민들을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합법적인 고문 도구들입니다.”

 

암베드카르는 1935년의 힌두교 포기 선언 이후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스리랑카에서

수행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로카나타'라는 승려였습니다.

 

로카나타는 힌두교 포기 선언을 한 암베드카르에게

불교에 귀의할 것을 종용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불교적 가치관이 자유, 평등, 박애(자비)라는

암베드카르의 정치 철학과 합치됨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스리랑카 승려가 인도 불교 포교를 위해 설립한

"인도 마하보디협회"를 통해 암베드카르에게

여러 가지 불교 관련 서적을 보내주며 부처님의 사상을 접하게 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정치가이자 활동가이면서도

종교적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카나타 승려의 서신 교류와

인도 마하보디협회 활동을 하며

불교야말로 자신의 삶의 철학과 합치됨을 자각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깨달음의 성지, 마하보디 사원 부처님 불상>

 

3. 암베드카르의 종교관

 

그는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혔습니다.

 

"누군가가 주장했듯이 종교는 결코 아편이 아닙니다.

만약에 저에게 어떤 선한 면이 있거나

제가 받은 교육이 우리 사회에 유익이 되었다면,

저는 그 모든 것을 저의 내면에 있는 종교적 감성에 돌리고 싶습니다.

 

저는 종교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종교의 탈을 선 위선은 철저하게 증오합니다......

 

종교는 하나의 신비한 영향력입니다.

그 신비한 힘은 우리의 삶 속에 흘러들어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우리의 모든 행동과 취향을 이끌어줍니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살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에게는 사고(생각)를 위한 마음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종교는 사람에게 희망을 고취시키고

그 희망을 발판으로 보람있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저는 종교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인간의 이성과 상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사회 생활의 근본 원칙들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당장에 저주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원칙의 문제에 머물러야 하며

결코 규칙의 문제로 타락해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종교가 규칙으로 격하된다면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닙니다.

진정한 종교적 행동의 핵심인 자발적인 책임성이 말살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교 사상과 접한 후 부처님을 다른 종교 창시자들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이 이성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것이 붓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일이 있어서는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붓다의 가르침이 이성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상,

그것이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심지어 배척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는 자신의 종교가 썪은 고목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붓다는 그것이 언제나 활기찬 모습을 띠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붓다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가르침에 변용을 가해도 좋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큰 용기를 저는 어떠한 종교의 창시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성지, 붓다가야>

 

4. 부처님의 다르마(법)

 

암베드카르는 <니카야(아함경)>를 비롯한

방대한 팔리어 남방 불전을 폭넓게 직접 섭렵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부처님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삶과 말씀에 가까이 다가갔고

부처님의 실천적 교리를 체화함으로써 

그 나름의 불교 사상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불교에서 비사회적, 비역사적 요소를 제거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불교사상을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저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니르바나(열반)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불교에서 신과 영혼을 분리해내고, 

다르마(법)를 부처님의 사상적 기초로 파악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힌두교에서와는 달리 불교에서는

하늘나라를 강조하지 않을 뿐더러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승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도덕과 비폭력, 그리고 평등과 형제애가 팔요하다는 것이

붓다가 우리에게 설파한 영원한 진리입니다."

 

"비록 불법에서는 신이 없지만

불법안에서는 다르마(법)가 신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다르마는 불교의 핵심입니다.

다르마가 없이는 불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 안에서의 다르마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동기에서 나옵니다.

거기에는 신의 인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다르마에 맞게 살아야하는 것은

결코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