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62) - 인도 신불교의 아버지 암베드카르(8) - 정법>
1. 암베드카르가 주목한 부처님의 다르마(법)
그렇다면 암베드카르가 주목한
부처님의 다르마(법)는 무엇일까요?
암베드카르에게 부처님의 다르마(법)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세계와 인간의 태생적 한계라고 하는
‘고(苦)의 제거’를 향한 실천적 도덕이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인간은 모든 악의 근원인
무지(무명)를 극복할 수 있는 토대로서 지혜와,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자비를 도구로 하여
덕을 실천함으로써 지고의 상태인 니르바나(열반),
즉, 가장 적정한 마음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불교는 세가지 원리, 즉
1. 프라즈나(미신 또는 초자연주의와 대조를 이루는 지혜)
2. 카루나(사랑,자비)
3. 사마타(평등)
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저는 불교를 사랑합니다.
이 원리들은 인간의 선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의할 경우
불법은 ‘프라즈나(지혜)’와 ‘카루나(자비)’를 두 기둥으로 받치고 있습니다.
붓다가 자신의 불법을 떠받치는 두 기둥 중 하나로
프라즈나(지혜)를 삼은 까닭은
자신의 가르침 가운데 미신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카루나’는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는 어떠한 인간 사회도 존립, 성장할 수 없기에
‘카루나’는 불법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오직 불법 안에서만이 ‘프라즈나’와 ‘카루나’는 하나가 됩니다."
이와 같이 암베드카르는
다른 종교의 ‘신’의 자리에
불교의 ‘다르마’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르마를 지혜와 자비의 정법(正法)으로 파악함으로써
현실 사회 속에서 인도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는
개혁의 ‘신(新)불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자유, 평등. 자비의 도덕이 필요했던
붓다 당시의 2,500년 전의 인도 사회와 똑같이
20세기 인도 사회는 자유, 평등, 자비(박애)가 필요한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2. 고(苦)의 극복
암베드카르는 ‘고(苦)’를 인간의 근원적 본질로서
그리고 사회적 현실로서 파악하였습니다.
그는 ‘고’의 존재보다 '고'의 극복을 위한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무지’를 깨고
'바로 보기(정견)'를 깨달음의 출발로 강조했습니다.
무지에서 깨어나서 바로 보는 정견(正見)만이
사회적 ‘고’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교가 허무주의의 종교가 아니라,
실천적 종교, 즉 ‘도덕’의 종교임을 선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아가서 그는 정법(saddharma)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 평등의 확대’에 두었습니다.
"흔히들 종교를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사회 생활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각자 자신의 세계에 한정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불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법은 그 근본과 본질이 철저하게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불법은 또한 "올바름"입니다.
이는 인간과 인간이 삶의 모든 국면에서 올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불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만이라도 함께 산다면 좋든 싫든간에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불법이 차지할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불법 없이는
인간 사회가 단 하루라도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불법에 귀의
그는 1946년에는 부처님의 이름을 딴
싯다르타 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1951년에는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개최하며
이를 경축하는 행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남방 불교 국가들의 주도하에
부처님 탄생 2500년 축제가 열렸던
1956년에 자신이 주로 활동했던
마하라시트라 주의 '나그푸르'라는 도시에서
마하르 카스트 출신의 불가촉 천민 50만명과 함께
단체로 불교로 개종하는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1956년 당시에 인도 전체의 불자의 숫자는 20여만명에 불과했습니다.
8세기 무렵 인도의 이슬람 침입 이후
"불교의 몰락"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인도에서
암베드카르와 그의 지지자들의 개종으로
인도 불교 인구는 그 이후로 점점 증가하였습니다.
현재에 불교는 천천히 기반을 넓혀 1981년 통계조사 결과
인도에서 약 500만명이 불교를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암베드카르의 지지자들로 나타나
그의 영향력이 불교 포교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암베드카르는 부처님의 생애와 불교 사상을 담아
불자들을 위한 입문서가 될 수 있는 “불타와 불법”이라는 책을 남겼습니다.
그는 집단개종식이 있은지 8주 후인 1956년 12월,
이 책의 원고를 마지막으로 교정하던 중
원고 더미 속에서 65세의 나이로 급서했습니다.
그가 남긴 '불타와 불법'은 우리 나라에서도
"인도로 간 붓다, 그 삶과 사상(이상근 역)"이라는 책으로 나와 있습니다.
4. 암베드카르의 불교관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이라는
인도 사회의 터부에 정면으로 대항했습니다.
그는 힌두교의 동정에 의해 단순히 불가촉천민의 지위를
가촉천민 수준의 향상을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터부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며,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불평등과 카스트 제도라는
감옥이 존재하는 힌두교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기본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자비)"의 3대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자신과 자신의 지지자들이 귀의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를 찾았습니다.
그는 이슬람교나 시크교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은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그는 사회 변혁을 꿈꾼 마르크스와는 달리 종교의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종교라는 마음의 양식을 필요로 하며,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갈고 닦고
희망을 북돋아주는 종교의 가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부처님의 삶과 말씀에 특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불교가 맹목적 신앙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체험을 바탕으로
자발적인 책임성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라는데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고"와 "카르마(업)"는
현실에 대해 숙명적이거나 허무적인 입장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고와 카르마의 극복"을 위한 현실의 실천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고(苦)의 극복을 위해 확대되어야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승가 공동체에서 사리불, 목련과 같은 브라만 출신과
우팔리 같은 천민 출신이 각성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승가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던 것처럼
인간 사회도 "자유, 평등, 자비"의 불교 가치에 따라
인간의 유익을 위해 올바르게 관계 맺음되어야한다고 본 것입니다.
암베드카르는 신에 대한 맹목적 신앙만을 강조함으로써
미신적 신앙으로 흐르고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신(神)" 위주의 종교관에서 "다르마(정법)'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적 자각과 실천이 중심되는 불교적 가치관을 통해 각성되어
자신과 불가촉천민들이 새롭게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그가 불가촉천민들과 불교로 개종한 것은 그의 말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새 술은 새 푸대에"라는 말처럼
그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을 통해
힌두의교 틀 속에서 벗어나 불교의 가치관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랬습니다.
암베드카르의 개종은 불교가 부처님의 고향인 인도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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