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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

불교의 역사(72) - 신앙의 불교(8) - 백제의 미륵 신앙

by 아미타온 2024. 12. 25.

<불교의 역사(72) - 신앙의 불교(8) - 백제의 미륵 신앙>

 

<익산 고도리 미륵 부처님>

 

 

1. 우리 민족의 미륵 신앙

 

미륵 신앙은 아미타불 신앙과 더불어

우리 민족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신앙입니다.

 

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미륵 부처님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공통적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절 이름뿐 아니라,

산 이름을 비롯한 지명에

미륵’, ‘도솔’, ‘용화’ 등 미륵과 관련된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에도 미륵 불상과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미륵 신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미륵 신앙을 어떠한 형태로 수용하였을까요?


앞에서 살펴본대로 미륵 신앙은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륵 보살님이 계시는 도솔천(천상 세계)에

태어나려는 상생 신앙입니다.

 

도솔천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욕계 4천 중 하나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천상 세계'라서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합니다.


미륵 보살님의 교화가 미치는 도솔천은 청정하여
탐욕으로 인한 번뇌망상 없이 공부하기 좋은 천상 세계입니다. 


착한 10가지 계율인 십선계를 잘 지키며

공덕을 쌓으면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 보살님의 제자가 되면

미륵 보살님이 지상에 하생할 때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미륵 부처님의 3번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익산 용화산과 미륵사지>



  
다른 하나는 하생 신앙입니다.

 

미륵보살이 이 땅에 내려와

미륵 부처님이 되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이 미처 제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제도하고

이상적인 불국 정토를 건설한다는 신앙입니다.

 

이러한 이상적인 불국 정토를 '용화(龍華) 세계'라고 하며,

용화 세계에 나서 동참한다는 신앙이 하생 신앙입니다.

우리 민족은 우리의 현실 세계인 이 땅을

불국 정토화한다는 미륵 신앙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초기에는 죽은 후  도솔천과 용화 세계에

태어나는데 관심을 둔 신앙 형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들어서면서

지금 현재, 바로 이 땅을 미륵의 불국토로

만들려는 열망을 가진 독특한 미륵 신앙을 가졌습니다.

 

<고창 도솔암 내원궁>

 

2. 백제 미륵 신앙과 선운사 도솔암


미륵 신앙이 가장 성행했던 나라는 백제였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익산 미륵사지와

선운사 도솔암, 서산 마애3존불, 태안 마애3존불,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 등에서 백제 미륵 신앙의 깊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고창 선운사 창건 설화 및 유적에서 백제 미륵 신앙을 살펴보겠습니다.


577년 백제 위덕왕 24년에 창건된 고창 선운사는

고창 서북쪽에 솟은 도솔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산 이름부터가 미륵 보살님이 계시는 도솔천에서 따온 것입니다.


선운사 서남쪽 골짜기로 올라가 절벽 사이에 있는

도솔암 역시 선운사와 같은 시기에 세워진 암자입니다.


도솔암에는 상,하,동,서,남,북 6암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에도 상도솔, 하도솔이 남아 있어
얼마나 미륵신앙이 성행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상도솔은 일명 '내원궁'이라고 불립니다.

 

내원궁은 미륵 보살님이 하생하기 전에 머무시며

천인들에게 설법을 하시는 장소입니다. 

 

상도솔은 하도솔(도솔암)에서

365계단으로 올라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 벼랑에 높이 25m의

거대한 미륵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마애 미륵 부처님>



선운사가 자리 잡기 전에 원래 이 곳은 도적의 소굴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단 스님이 들어와 이들을 구제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전합니다.


검단 스님은 불법을 포교하기 전에

이들에게 소금과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이들이 양민으로 살아갈수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검단 스님은 민중들이 안락한 문명 세계를 지향하는

용화 세계를 구현하는 미륵 신앙에 기반을 두고
민중이 굶주리지 않고 바른 생활 방편으로 살아갈 수 있고 

도적의 죄업에서 벗어나 삶을 살수 있는 바탕을 조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민중들과 함께 미륵 보살님이 머물고 계시는

도솔천에 나고자 하는 미륵 신앙을 강렬하게 펼쳤던 것입니다.

 

<익산 왕궁리 5층석탑>


3. 백제 미륵신앙과 계율 불교

 

한편, 백제 법왕은 왕위에 오른 해(599년)에

조서를 내려 살생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민가에서 기르는 사냥매 따위를 놓아주게 하고,

고기 잡는 도구를 불사르는 등 사냥과 천렵을 일체 금지시켰습니다.


그 이듬해에 수도인 부여에 왕흥사를 창건하려고 터를 닦았고,
왕흥사는 그의 아들 무왕이 이어받아 완성하여 '미륵사'라고도 불렀습니다.

백제 불교는 계율을 잘 지키는 율종이 번성했다고 합니다. 
백제의 계율 불교가 미륵 정토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미륵상생경>에서는 계율을 잘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이

도솔천에 올라 미륵보살을 친견한다고 하였습니다.


<미륵하생경>에도 인간이 살생과 도둑질 등의 10가지 악행을 종식하고

행동과 말과 의지로 10가지 선행을 실천하는 10선행을 실천할 때

미륵 부처님께서 하생하여 새 세상이 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10선법은 불교 입문자들의 5계를 한층 더 발전시킨 계율입니다.


잘못된 말과 행동, 의식을

새로운 말과 행동, 의식으로 전환하는

삶의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미륵 부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세상은

인간의 업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때 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백제 불교는 미륵 신앙과 함께 계율을 중시한 불교였습니다.


백제에 미륵 신앙이 전파된 것이 4~5세기 정도로 추정됩니다.


백제인들은 이 땅을 정토화하려는 미륵신앙에 관심을 갖고
계율지킴을 통해 미륵 보살의 불국토에 태어나고자 했던

강한 신앙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9층석탑>


4. 익산 미륵사지와 미륵 하생 신앙

 

한편, 백제 말기인 무왕 때는

이전의 미륵 상생신앙에서 미륵 하생신앙으로의 전환이 눈에 띕니다.


백제 무왕 때 백제는 미륵의 불국토인 용화 세계로서

미륵불이 출현한 땅이라는 백제 불국토 신앙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무왕은 왕이 되기 전에 마를 캐는 서동이었는데,

<서동요>를 통해 신라 선화 공주와 인연을 맺은 왕입니다.

무왕은 후일 왕위에 올라 왕비가 함께

익산 용화산 사자사 지명 법사를 자주 찾아갔다고 합니다.

 

하루는 지명 법사를 만나 뵈러 가는 도중

용화산 밑에 있는 연못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못에서 미륵 삼존불이 출현하였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이 때, 미륵불의 출현을 기원하기 위해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바로 '미륵사지 구층석탑'으로 유명한 미륵사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미륵사는 삼중 구조로 지었다고 합니다.

 

법당도 셋이고, 탑도 셋이고, 회랑도 셋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미륵 삼회전(三會殿)'이라고 합니다.

 

삼회전은 미륵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하생한 후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고 세번에 걸친 설법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용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삼법당 삼탑 구조로 이루어진 미륵사는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의 절이었다고 합니다.

 

<탑이 3개 있는 미륵사 추정 모형 (익산 박물관)>

 


미륵 부처님 이 땅에 출현하여 3번의 설법으로

이 땅을 정토화하는 것을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백제 무왕의 미륵사 건립은

제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진 미륵 신앙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공사였던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백제 민중들 사이에

미륵 신앙이 얼마나 널리 신봉되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미륵 부처님이 하생하여 용화 세계를 열어서
미륵 부처님의 불국토를 바로 지금 바로 이 땅에

구현하고픈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