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24) 지옥과 천상을 왕래한 말리카 왕비 이야기>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때,
코살라 국왕 파세나딧 왕의 왕비 말리카와
관련하여 게송 151번을 설법하시었다.
어느 날 말리카 왕비는 발을 씻으려고
침실 옆에 있는 욕실에 들어갔다.
이때 왕비의 애완견이 왕비를 따라들어 왔다가
왕비가 발을 씻기 위해 몸을 구부리자
뒤로 접근하여 그녀의 중요한 부분을 자극했다.
왕비는 개의 이런 행동이 싫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는데,
마침 파세나딧 왕이 침실 창문을 통해서 그 장면을 보았다.
그는 왕비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이 음란한 여인아!
욕실 안에서 개하고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내가 이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설마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
왕비는 마음속으로 굉장히 놀랐으나
짐짓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저는 다만 욕실 안에서 발을 씻고 있었을 뿐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덧붙여서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있어요.
누가 아침에 욕실에 혼자 들어갔을 때
이쪽 창에서 보면 혼자인데도 둘이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만약 제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직접 한 번 들어가 보세요.
제가 이쪽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볼 테니까요."
왕비의 말에 따라 왕은 욕실 안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말리카 왕비는 이렇게 따지는 것이었다.
"아니, 점잖은 대왕께서
암염소와 그런 이상한 짓을 다 하신단 말입니까?"
왕은 자기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한편으로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라고 여기며
일단 왕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왕비는 이 같은 기지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왕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워 가며
거짓말로 자기의 잘못을 위장한 데 대해 큰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뒤로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만큼 많은 공양을 올렸고,
왕인 남편과 함께 많은 선행도 쌓았다.
그랬지만, 이때의 자기 잘못은 잊지 않은데 비해
자기가 쌓은 선행은 잊고 있었기 때문에,
죽자마자 바로 지옥으로 향하고 말았다.
왕비의 장례식이 끝나자
파세나딧 왕은 부처님께
왕비가 죽어서 어디에 태어났는지 여쭈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왕이 왕비를 잃어버린
슬픔과 그리움에 잠겨 있는 이때
왕비가 지옥에 있다고 하면
그 많은 공양 공덕과 선행이 다 소용없었다고 생각하여
인과응보의 업(業)의 법칙을 의심하리라 여기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써
왕이 다른 생각을 갖도록 만드셨다.
그리하여 왕은 부처님께 왕비에 대해 질문하려던 것을
까마득히 잊고 다른 대화만 나누다가 돌아갔다.
한편 말리까 왕비는 지옥에서 7일를 보낸 뒤
이번에는 도솔천에 태어났다.
그날 부처님께서는 파세나딧 국왕의
궁전으로 아침 탁발을 나가시어
왕에게 오늘은 왕실의 수레를 보관하는
창고 그늘에서 잠시 쉬어 가고 싶다는 뜻을 전하셨다.
그러자 왕은 부처님을 맞이하여 공양을 올렸고,
공양이 끝나기를 기다려
침통한 표정으로 왕비가 어디에 태어났는지를 여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왕비가
도솔천에 태어났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이 말씀을 들은 왕은 매우 기뻐하며 이같이 찬탄했다.
"말리카 왕비는 이제 도솔천 천상에 태어났는데,
그녀가 거기에 태어나지 않으면 갈 곳이 어디겠습니까?
그녀는 언제나 착한 일을 하려는 생각뿐이었고,
그 생각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으며,
내일은 부처님께 무엇으로 공양을 올릴까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왕비는 이제 참으로 기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처님의 변변찮은 재가 신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저기 당신의 할아버지가 타시던 마차를 보시오.
저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제는 모두 낡아 버렸소.
대왕이여, 당신의 몸도 저 수레와 같나니,
그와 같이 늙고 있으며 죽어가고 있소.
오직 다르마(法:법)에 따르는 수행력만은
늙음과 죽음의 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잘 꾸며진 왕실의 마차도 낡아져 있다.
인간의 몸도 이와 같이 늙어 가나니
다만 다르마를 수행한 힘만이 쇠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르마야말로 모든 것 가운데 으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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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솔함
말리카 왕비는 말리꽃 화원에서
꽃을 가꾸는 미천한 노예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파세나딧 왕의 눈에 들어
코살라국의 왕비가 되어 부처님 교단에 보시를 많이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했다고 합니다.
법구경 스토리를 읽을때 진솔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재가 수행자였다고 하는 말리까 왕비가
인간으로서의 성적 쾌감과 욕망을 느낀다는 것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인 왕에게 이 낯뜨거운 장면이
들키는 상황 설정도 참 재미있습니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단순한 거짓말로 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이 암염소와 이상한 짓을 한다는 누명을 씌워버립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에 가책을 받는 왕비의 모습 속에서
한 인간의 리얼한 모습을 드러내는
법구경의 매력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지나친 거짓말로
누명까지 씌운 사실에 대해 큰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평소의 삶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고
불교 교단에 잘 공양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행을 베풀고 수행한 모범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선행은 잊어 버리고
자신의 잘못을 더 크게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죽자마자 7일간 지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윤회는 인과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식의 작용이라는 측면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죽기 전에 자신이 어떤 의식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가,
사후 세계에 대해 어떠한 믿음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평소의 삶은
착하게 베풀고 수행한 수행자의 삶이었으므로
지옥 생활은 길지 않았고 7일 후에는 도솔천으로 환생하였습니다.
2. 사려 깊음
평소 말리카 부인을 사랑했던 남편에게
그녀의 윤회의 모습을 전하는 부처님의 모습 또한 인상적입니다.
부처님은 평소 선한 삶을 살았던
자신의 아내인 말리카 왕비가 지옥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남편인 파세나딧 왕이 안다면
업(카르마)에 의한 인과의 법을 믿지 않을까 우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그녀가 지옥에 잠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왕비가 지옥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환생하자
왕비가 천상 세계 중에서도 지족천(知足天),
즉 만족하는 마음으로 수행하기 좋다는 도솔천에 태어나
좋은 윤회를 하고 있슴을 말씀하시며 인과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부처님의 사려 깊은 자비심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다르마(법)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해악이 되는 사실은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다르마를 법답게 받아들일 수 있고
참다운 행복의 길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때와 상황에 맞게 시기 적절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모습은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 때나 사실을 가감없이
무조건 드러내는 것이 진실된 사람의 모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일지라도 상대의 근기와 상황을 고려하여
상대가 바르고 행복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때와 상황에 맞추어 시의 적절하게 바른 표현으로 드러내는 것.
이것이 진실을 전달하는 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파세나딧 왕에게 전하고자 한 진실은 무엇이었나요?
아끼는 물건도, 사랑하는 아내도, 나의 몸도
무상하여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이지만,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가져가는 무상하지 않은 것은
다르마(불법의 진리)를 닦은 수행의 힘라는 것.
이 진실을 시의 적절하게 왕에게 밝히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상하지 않은 것은
다르마(법)라는 것을 알고
다르마(법)에 귀의하고
다르마(법)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행해야 합니다.
그 수행의 힘이 죽음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자신이 가져가는 참된 재산이라는 진실을
파세나딧 왕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존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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