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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법구경(127) 마하다나의 아들 이야기

by 아미타온 2025. 2. 1.

 <법구경(127) 마하다나의 아들 이야기>

 

<수원 봉녕사>


부처님께서 미가다야 숲 속에 계시던 때,

바라나시의 부호 마하다나의 아들과 관련하여 게송을 설법하셨다.

 

 마하다나는 바라나시라는 큰 도시에 사는 부호였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어렸을 때 공부를 즐기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나이가 들어 어떤 부잣집 딸의 사랑을 받아 결혼했다.

 

아들이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양쪽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 두 사람에게 황금 팔십만 냥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남겨 주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너무나 어리석어서

그 재산을 지키거나 불려 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낭비를 일삼는 것이었다.

 

그들은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하지 않고

다만 친구들과 어울려 쾌락에 빠져 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많던 재산도 바닥이 나서

마침내 땅과 집까지 팔게 되었고,

그러고도 모자라 가구까지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같이 그들이 아주 불쌍한 형편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산이 많던 시절에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고 자기들의 쾌락만 추구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아무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어떻게 해야 돈을 버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과거 대단했던 부호의 아들이 거지가 되어

수도원의 양지바른 담 쪽에 기대앉아 있는데,

어린 사미가 자신이 먹다 남은 음식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그때 그 장면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은근히 미소를 지으셨다.

 

이에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서 왜 그들을 보시며 미

소를 지으시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저 부호의 아들을 보아라.

그는 일생을 통해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생활을 해왔느니라.

 

만약 그가 어렸을 때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그는 지금 이 도시에서 으뜸가는 재산가가 되었을 것이니라.

 

그리고, 그가 어려서 비구가 되었더라면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며,

그의 아내가 그랬다면 그녀도 아나함에 이르렀을 것이니라.

 

만약에 그가 청년 시절에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그는 지금 이 도시에서 두 번째 가는 재산가가 되었을 것이요,

그가 그때 출가하였다면 그는 아나함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사다함이 되었을 것이니라.

 

아난다여, 그가 중년이 되었을 때라도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그는 이 도시에서 세 번째 가는 재산가가 되었을 것이요,

그가 그때 출가하였다면 그는 사다함을,

그의 아내는 수다원를 이루었을 것이니라.


그러나 아난다여,

그는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나 혹은 장년이 되었을 때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고 노력도 하지 않았느니라.

그랬기 때문에 그는 세상 사는 법을 모르고 재산을 지킬 줄도 몰라

마침내 그 많던 재산을 다 탕진하였느니라.

 

그는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면 도와 과를 성취하여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도

이제는 그 모든 기회를 다 놓쳐 버리고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버려진 인생이 되었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 두 편을 읊으셨다.


그들은 젊었을 때 청정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고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가진 재산을 모두 낭비한 지금 실의에 잠긴 모습은
마치 날개 부러진 왜가리가

물고기 없는 마른 못에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젊었을 때 청정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고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힘없이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라.
마치 힘이 다해 땅에 떨어지는 화살과 같이
지나가 버린 것을 신음하고 탄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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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자의 공부

 

<논어>를 보면 공자는 15살에 배움에 뜻을 세웠다고 합니다.

 

15살 때 배움에 뜻을 두었고

열정을 가지고 배움의 길에 매진했기 때문에

나이 30이 되어서는 자신의 예와 학문의 길을 확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30대에는 예(禮)와 학문의 길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40살에는 자신이 가는 인생의 길에 대해 의혹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50살에는 하늘의 명령인 천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60살에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귀가 거슬리지 않고

순하게 받아들이는 인격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70살에는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고 살아도 

법도를 어긋나지 않는 완성된 군자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제자들에게 토로했습니다.

 

결국 공자가 대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0대에 배움에 뜻을 세우고

20대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30대에 자신의 예학(禮學)의 세계를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과적으로 40대 이후로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의 

군자로서의 완성의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 무상함의 자각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복을 타고 났고

수행을 했으면 아라한 과에 이를 수 있는 덕성과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 배우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늙어서는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왜가리 신세처럼

힘이 다해 땅에 떨어지는 화살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게 되어 뒤에 따라가려면

몇 십배 힘들거나 아니면 아예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늙어서는 깡통 신세가 되고 만다는

만고의 진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오늘 법구경에서 말하는 게송의 진리 때문입니다.

 

단순히 우리는 결국 늙고 죽는다는

무상성을 직시하는 것보다

시간은 빨리 흘러 죽음에 이르고야 마는데

우리는 살아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이 중요합니다.

 

깡통이 된 부자처럼 

젊었을 때 공부와 수행에 뜻을 세우고

열정을 가지고 공부와 수행에 매진하고

자신의 공부와 수행의 길을 확립해 놓지 않으면

늙고 병들게 되면 죽음만이 자신을 기다립니다.

 

이 엄연한 진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원효 대사가 지었다는 <발심수행장>의

끝 구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흘러 하루가 급히 지나가고
나날이 흘러흘러 보름 한달 속히 되며
한달 한달 계속되어 홀연히 일년 지나가고
한해 두해 거듭하여 문득 죽음에 이르도다.

부서진 수레는 구를 수 없고 늙은 몸으로는 닦지 못하네.
누워서 게으름만 부리게 되고 앉아도 정신만 혼미해지네.
몇 생을 닦지 않고 낮과 밤을 헛되이 보냈으며
헛된 몸으로 몇 생이나 살았거늘 이 생마저 닦지 않는가.
이 몸은 반드시 마침이 있으니 다음 생은 또 어이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급하고 급하구나."

 

참 절절히 가슴을 때리는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외우고 또 외우며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