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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경

무량수경(3) / 법장 보살의 삶과 법의 진실

by 아미타온 2023. 11. 23.

<무량수경(3) / 법장 보살의 삶과 법의 진실>

 

<부여 무량사 아미타 삼존불>

 

1. 법장 보살 스토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지난 시간에 <무량수경>에 나오는

법장 보살 스토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어느 훌륭한 왕이 세자재왕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아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 비구가 되었다는 것과

법장 비구가 세자재왕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5겁의 긴 사유를 통해 48가지 고귀한 서원을

세우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법장 비구는 출가한 스님이었지만,

이 세상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가 되겠다는 고귀한 서원을 세우셨기 때문에 

‘법장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즉, 한 인간이 세속의 국왕에서 출가한 스님이 되었고,

서원을 세워 보살이 되어 부처님의 되는 과정을

<무량수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무량수경>에 등장하는 법장 보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무량수경>에 등장하는 아미타 부처님의 전생(前生)인

법장 보살에 대해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법장 보살은 과연 실제 인물인가?

 

가공의 만들어낸 인물이 아닌가?

 

<무량수경>에 등장하는 법장 보살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고,

이 이야기는 과연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부여 무량사 극락전 그림>

 

2. 불법(佛法)의 진실을 설하는 대승경전

 

<무량수경>과 같은 대승경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타난 경전입니다.

 

따라서 <아함경>과 같은 초기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생생한 이야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대승경전의 이야기는 부처님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을 적은 것은 아닙니다.

 

<무량수경>에 나오는 법장 보살과

세자재왕 부처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믿을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량수경>과 같은

대승 경전 속의 이야기가 가치있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는 불법의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시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상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불법의 진리는 시간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세상의 일은 헛되고 임시적이며,

오직 부처만이 참되다(世間虛假, 唯佛是眞)”라고 말했습니다.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역사 속에 역사를 빛나게 하는

진리가 살아 숨쉬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있지만,

진리(불법)의 이야기는 시간을 뛰어넘는

‘영원한 지금’의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승 경전은 역사에 의거한 초기 불경보다

더 진실한 불법의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량수경>에 나오는 법장 보살의

법장(法藏)’이라는 이름은 ‘진리(법)를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진리(불법)에 입각해 한 생을 살았던

가장 모범적인 존재의 모습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실한 삶에 살고자 한다면

법장 보살 이야기처럼 절실한 이야기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리(법)에 순응한 생활로 들어가면,

법장보살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강릉 신복사지 약왕 보살님>

3. 도심을 일으킨 보살의 진실한 삶

 

우리 인간에게 진리(법)에 입각한 진실한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바로 법장 보살의 삶일 것입니다.

 

보살은 ‘보리심’을 일으켜 구도(求道)에 신명을 바친 사람입니다.

 

보리심은 고통받는 존재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자비심으로

이들을 구제하고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를 ‘도심(道心)’이라고도 합니다.

 

도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발보리심’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다른 나라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 지상에서 마음을 도에 쏟아 부으며

중생을 구제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모두 보살입니다.

 

그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원래는 보살의 지위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보살성(菩薩性)이 있기 때문에,

법장 보살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강릉 신복사지 약왕 보살님>

 

4. 도심을 일으킨 법장 보살의 근본 서원(본원)

 

법장 보살은 한 나라의 왕으로 법(진리)에

마음을 쏟는 거사로서 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법(진리)을 위해

몸을 바치는 비구(스님)가 되고,

보살이 되어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던 것입니다.

 

거사는 속세에 있는 사람이고,

비구은 출가의 몸이며,

부처는 깨달은 분입니다.

 

그리고, 성불을 이룬 부처님께서

안주하는 나라를 정토(淨土)라고 합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정토에 머무는 여래가

옛날에는 사바세계에 머물던 거사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불법은 범부와 부처,

예토와 정토를 연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법장 보살은 일체 중생을

성냄과 탐욕,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정토로 이끌고자 하는 간절한 원을 세웠습니다.

 

스스로를 구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구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도록 그의 사유(지혜)는

중생 제도의 서원(자비)으로 옮아갔습니다.

 

‘자비(慈悲)는 큰 사랑이니 이

를 대비(大悲)라고 부릅니다.

 

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보살이 부처되기 위해 세운 근본 서원이기 때문에 

본원(本願) 또는 대원(大願)이라고도 합니다.

 

 

<강릉 신복사지 약왕 보살님>

 

5. 법(진리)의 진실

 

법장 보살의 서원은 단호합니다.

 

“나는 세상을 뛰어넘을 원을 세우니,

반드시 위없는 도에 이르리라.

이 서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이처럼 단호한 서원을 세운 법장 보살은

기나긴 세월의 보살행에 정진한 끝에

마침내 아미타 부처님이 되어 극락 정토를 장엄했습니다.

 

이처럼 한 인간이 보리심을 발하여

‘거사에서 보살로, 보살에서 부처로’ 이어지는

장대한 법(진리)의 이야기야말로

시간 속에서 꺼지지 않는 빛을 발하는 법(진리)의 진실인 것입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법장 보살의 삶을 설하는 <무량수경>은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는 법(진리)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량수경>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면

‘법장 보살’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쉴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법장 보살과 함께

법(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량수경>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무량수경(3)  법장 보살의 삶과 법의 진실>

https://youtu.be/TnXxnKL2oxc?si=3ZsBqvfdvP3sSE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