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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경

무량수경(8) / 중생계의 실상과 이하백도의 비유

by 아미타온 2023. 12. 3.

<무량수경(8) / 중생계의 실상과 이하백도의 비유>

 

<지옥고>

 

1. 무량수경 하권의 가르침

 

<무량수경> 하권에는 미륵보살이 청중의 대표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하권에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 거짓말 등의

악업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중생계의 실상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러한 악업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고,

이들로 하여금 세속적 악업의 허망함과 다음생의 두려움을 자각하여

극락왕생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악업에서 벗어나 착한 선업을 쌓으며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와 원력을 믿고

극락왕생하라고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난 존자로 하여금

서쪽의 극락세계를 향해 예배를 올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든 대중들이 극락 세계의 장엄을

두 눈으로 보는 신통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옥도>

 

2. 악업의 과보와 중생계의 어두운 실상

 

<무량수경> 하권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계의 실상을 세세하게 설하실까요?

 

왜 중생계의 어두운 실상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계실까요?

 

혼탁한 세상에서 악업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실상을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내적 성찰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솔직하게 돌아보며

악업을 참회하고 구원의 길을 절실하게 구하라는 것입니다.

 

악업의 과보와 윤회의 두려움에 눈떠서

극락 왕생을 구하라는 진리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토교학에서 <이하백도(二河白道)>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하백도>의 비유는 무량수경 하권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드러낸 비유입니다.

 

<이하백도 비유>

 

3. 이하백도의 비유

 

"어느 나그네가 동쪽 언덕에서

서쪽 언덕을 향해 긴 여행길에 올랐다.
그런데, 홀연히 길 중간에

남북으로 흐르는 두 개의 큰 강이 나타났다.

북쪽의 강은 파란 물의 강이고,

남쪽의 강은 붉은 불의 강이다.


두 강의 폭은 아주 넓고,

두 강의 중간에는 좁은 하얀 길(白道)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좁은 백도는 파란 물결에 의해 씻기기도 하고,

붉은 불길에 의해 태워지기도 한다.

나그네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나그네 뒤로는

도적의 무리와 사나운 야수 떼가 덤벼들고 있지 않은가?

도적과 야수는 계속 앞을 가는 것은

죽음 뿐이라고 위협하며 돌아오라고 말한다.
나그네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할 뿐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그네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내가 지금 되돌아가는 것도 죽음이요, 멈추는 것도 죽음이요,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죽음이니 도무지 어떻게 해도 죽음을 면할 수가 없겠구나.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앞을 향해 이 길(白道)을 따라 가리라.
이 길(白道)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건널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나그네의 앞쪽에 있는

언덕 위에서 홀연히 어떤 부처님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대여. 빨리 결정심을 내어 백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라.
그 길은 위험한 길이 아니니 안심하고 나아가라. 되
돌아가는 것은 곧 죽음이다.”

그리고, 강 건너편 언덕에서도 부처님의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생각할 것 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곳을 향해 곧장 오라.
내가 너를 능히 보호해 줄 수 있으니

물과 불의 재난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두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과 용기를 갖게 된 나그네는
한마음으로 좁은 백도를 뚜벅뚜벅 걸어 무사히 목적하는
강 건너의 피안에 도달하게 되어 좋은 벗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일본 교토 영관당 이하백도 그림 - 분노의 강>

 

4. 이하백도의 비유의 상징

 

<이하백도>의 비유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동쪽 언덕' '서쪽 언덕'은 각각 ‘사바 세계’ ‘극락 정토’를 말합니다.

'황량한 여행길'은 나쁜 벗이 늘 따르고 훌륭한 선지식이 없슴을 뜻합니다.

 

따라서, ‘서쪽을 향해 가는 나그네’

사바 세계에서 극락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중생을 의미합니다.

 

이를 실존적으로 바라본다면 바로 ‘나 자신’이 됩니다.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물의 강’ '탐욕과 애착하는 마음(탐욕)'이고,

‘불의 강’이란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분노)'을 말합니다.

 

물결이 쳐서 파도가 치는 것은

탐욕과 갈애의 마음이 일어나 선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고,

불길이 일어 이글거리는 것은 분노와 혐오의 마음이

능히 자신이 쌓은 모든 공덕을 태울 수 있슴을 비유합니다.

 

결국 <무량수경> 하권에서 이야기하는 중생계의 실상은

탐욕과 분노로 인해 악업을 저지르는 두개의 강(二河)을 의미합니다.

 

동쪽 언덕의 도적과 야수의 무리는 생각과 감정,

바깥 대상이 끊임 없이 쾌락과 거짓의 유혹과 위협으로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이하백도 비유>

 

하얀 백도(白道)는 중생들의 번뇌 속에

한 줄기 청정한 '왕생심(믿음)'이 생기는 것을 비유합니다.

 

중생에게 탐욕과 분노의 번뇌는 벗어나려 해도

쉽지 않고 늘 파도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번뇌 속에서

청정한 왕생심(믿음)이 생긴다는 것입이다.

 

연꽃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렸을 때

화려한 꽃을 피우듯이 청정한 왕생심(믿음)도

번뇌 속에서 생겨나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즉, 번뇌와 악업으로 눈물 흘리는 사람만이

극락을 절실히 구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도 죽음이고,

뒤로 돌아가도 죽음이고,

제 자리에 멈추어도 죽음이라는 설정은

우리 삶의 실상이자 한계상황입니다.

 

칡넝쿨에 매달려 꿀에 취한 채 죽음의 나락을 향해

떨어지는 인간의 가엾은 실존을 의미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

 

5.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

 

그런데, 이와 같은 가엾은 중생들을 구제하는 두 분의 부처님이 계십니다.

 

한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또 한분은 아미타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악업의 과보와 윤회의

두려움을 가르쳐 극락 왕생을 격려해주시고,

아미타 부처님은 큰 사랑으로 가엾은 중생들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즉, 두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비 원력으로

우리들은 서쪽 언덕을 향해 백도의 길을 갈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도는 ‘중생의 청정한 왕생심(믿음)’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를 이중으로 나타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탐욕과 분노의 강이 소용돌이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무아미타불’의 백도를 향한 걸음을 용기 있게 걸어가라는 가르침입니다.

 

<유튜브 극락회상 - 무량수경(8) 중생계의 실상과 이하백도의 비유>

https://youtu.be/4wcKCOFyF_k?si=of0K3EiQvSTegPP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