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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58

금강경(22)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3 - 흉내 왜냐하면 여래께서 깨닫고 설하신 가르침은 별개의 독립된 존재로 생각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설명될 수도 없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은 자존(自存)하는 것도 아니며, 자존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1. 구지 선사와 엄지 손가락 중국 당나라 때에 구지(俱指) 선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가르침을 얻으려고 찾는 이가 있으면 한결 같이 엄지 손가락 하나만 세울 뿐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먼 곳에서 구지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법을 물으러 왔습니다. 마침 구지 선사는 출타하고 안 계셔서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지 스님을 시중 드는 동자가 “우리 스님의 법문이라면 그 동안 많이 보고 들은 바.. 2024. 3. 7.
금강경(21)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2 -없슴(무) 수보리 존자가 대답했다. "적어도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바로는, 위없는 깨달음이라 불리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이란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1. 무(無) 를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5비구에게 초전법륜을 설하신 이후로 사리불, 목건련 등의 많은 출가 비구들과 빔비사라왕, 위제희 왕비 등을 비롯한 많은 재가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깨달음 이후 열반에 드시기 전까지 길에서 길로 다니시며 진리를 구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전법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처님께서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셨고,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설하셨다고 답해야 할 것입니다... 2024. 3. 4.
금강경(20)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1 -의문 제7분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 얻은 것도 설한 것도 없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느냐? 또한 여래가 내린 가르침이 있느냐?" 수보리 존자가 대답했다. "적어도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바로는, 위없는 깨달음이라 불리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이란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깨닫고 설하신 가르침은 별개의 독립된 존재로 생각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설명될 수도 없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은 자존(自存)하는 것도 아니며, 자존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인(聖人)들은 무위법(無爲法)으로 다른 이들과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1. 의문 제7분의 제목은 "무득무설(無得無說)"분입니다. "얻은 것도 없.. 2024. 3. 1.
금강경(19)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4 - 집착 그러므로,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이 없다는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래께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모든 가르침을 하나의 뗏목으로 여겨야 한다."라고 하신 숨은 뜻이다. 가르침이 아닌 것이며 가르침조차도 모두 버려야 한다." 1. 불교의 목적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는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행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함을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확산시켜 타인의 고통을 가엾이 여기고 이들까지 참된 자유와 행복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중생의 참된 자유와 행복인 해탈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다양한 중생과 상황에 맞는 방편법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24.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