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인물사68 불교 인물사(45)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5) - 8년간의 역경 작업 8년간의 역경 작업> 구마라집 법사가 제일 먼저 번역한 경전은 이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인도 범본(梵本:산스크리트본)을 갖고 한역 경전으로 새롭게 번역하고당시 국왕인 요흥도 직접 참여하여 이전에 번역하였던 경전을 들고 서로 대조하며 교정을 하였습니다. 옛 번역을 구마라집 법사의 새로운 번역어로 바꿔 놓으니 그 뜻이 원만하게 소통하여 대중들이 모두 기뻐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번역이었음에도 구마라집 법사는 번역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습니다. "인도의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대단히 중시한다.그 오음(五音)의 운율이 현악기와 어울리듯이, 문체와 운율도 아름다워야 한다.국왕을 알현할 때에는 국왕의 덕을 찬미하는 송(頌)이 있다.부처님을 뵙는 의식은 부처님의 덕을 노래로.. 2024. 8. 6. 불교 인물사(44)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4) - 16년간의 유폐 생활 16년간의 유폐 생활> 1. 여광 휘하에서 16년의 감금 생활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여광이 귀환하는 도중 전진에서는 정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요장'이 전진의 왕인 부견을 살해하고 황제가 된 것입니다.역사가들은 요씨가 부씨 일족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이후를 '후진(後秦)'이라고 합니다.구마라집 법사를 붙잡은 여광은 자신이 모시전 황제인 부견이 살해당하자 전진의 수도였던 장안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쿠차와 장안의 중간에 있는 양주(凉州)에 머물러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며, 나라 이름을 '후량(後凉)'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파계한 구마라집 법사는 후량의 황제가 된 여광의 휘하에 계속 머물렀습니다.한번은 여광이 전쟁을 벌였는데, 도중에 군사를 산 밑에 주둔시켰습니다.그러자 구마라집 법사는 이 .. 2024. 8. 2. 불교 인물사(43)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3) - 조국의 멸망과 파계 조국의 멸망과 파계> 1. 조국 쿠차의 멸망 전진의 황제 부견은 실크로드를 정벌하는 장군 여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무릇 제왕은 하늘의 명에 응하여 다스리고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는다.어찌 그 땅을 탐하여 정벌하는 것이겠는가?바로 도의를 품는 사람 때문에 정벌하는 것이다.짐은 들으니, 서역에는 구마라집이라는 이가 있어불법을 깊이 이해하고 음양을 익숙히 잘 알아 후학들의 으뜸이 된다고 한다.짐이 깊이 생각하건대 어질고 밝은 이들은 나라의 큰 보배이다.만약 쿠차국을 정복하거든 곧바로 역마를 급하게 달려 구마라집을 후송하라." ---------- 중국 불교는 북방 민족이 중국을 차지한5호 16국 시대에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유가나 도가 등과 같은 기존 사상들이 뿌.. 2024. 7. 29. 불교 인물사(42) - 경전 번역의 선구자, 구마라집 법사(2) - 서역 최고의 학승 1. 사리불 존자의 화신, 구마라집 법사 이와 같이 구마라집 법사는 7살 때 동진 출가하여쿠차 제일의 사원인 고바시 대사원에 머물렀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기억력이 뛰어나 매일 1,000개의 게송을 암송하였다고 합니다. 구마라집의 어머니 지바도 성인의 흐름에 든다는 수다원과에 올랐다고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어머니와 아들입니다. 한편, 구마라집 법사가 9살이 되자그는 어머니와 함께 인도 유학에 올랐습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당시 불교 최고의 배움터인 인도 카슈미르로 유학했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카슈미르 국왕의 사촌 동생인 반두다라 존자에게 설일체유부(소승)에 전승되어오던 아비달마 논서를 배웠습니다. 구마라집 법사는 뛰어난 지혜와 학습으로 '사리불 존자의 현신'으로 불릴 정도로 .. 2024. 7. 25. 이전 1 ··· 3 4 5 6 7 8 9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