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 인물사58

불교인물사(28)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4) - 청년 지눌의 고뇌와 주장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4) - 청년 지눌의 고뇌와 주장>  이번 시간부터는 지눌 스님의 삶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고려 불교의 혼탁한 상황과선종과 교종의 다툼 속에서청년 지눌 스님의 고뇌와 주장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1. 지눌 스님의 탄생과 출가 지눌 스님은 고려 18대 왕인 의종 12년(1158년)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려 시대 불교는 국가의 이념적 기반이자 국교였습니다. 왕은 정치적 결정이나 종교 의례에 관해서 승려의 자문을 구했고,교단과 승려는 권력의 보호를 받으며 정치적, 경제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불교 교단은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함으로써 부를 축적했습니다. 불교 교단의 경제적 풍요는 재물과 권력에 대한 탐욕과 투쟁.. 2024. 5. 30.
불교인물사(27)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3) - 고려 불교의 문제점(3) 고려 불교의 문제점(3)>  (3) 무신 정권의 등장과 불교계의 위기 1) 무신 정권의 등장과 교종 불교의 탄압 무신 정변에 의해 왕과 문신들이 살육을 당하고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었습니다.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귀족 불교 세력은 무신 정권에 대해 반발했고 항거하여 일어났습니다. 1174년 화엄종의 귀법사 승려 100여명이 무신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궁궐로 들어가 궐기하였으나 이의방의 군사에게 수십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뒷따라 중광사, 홍호사, 귀법사, 흥화사 등 여러 절의 승려 2천명의 승려가 봉기하여궁궐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다시 이의방 군사들에게 1백여명이 참살당했습니다. 이의방은 이들 승려들이 머물던 6곳의 절을 불태워버렸는데, 이들은 왕권을 보호하려는 교종 계열의 승려들이었습니다. 한편, 1.. 2024. 5. 27.
불교인물사(26)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2) - 고려 불교의 문제점(2) (2) 사원전의 비대화와 승려들의 부패 1) 사원전 농경 사회에서 땅은 모든 재산의 원천입니다.11세기 사원 경제는 사원전을  통해 더욱 확대되어 갔습니다. 사원전은 임금이 내려준 땅, 신도가 시주한 땅, 절에서 개간한 땅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에는 절에서 소작료를 받거나, 상업적 이익을 얻고 이자 놀이에 열중하여절 자체에서 사들인 땅이 더욱 늘어나는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아자 놀이는 주로 "보(寶)"를 통해 쌀과 베를 빌려주고 이자 소득을 올리는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보"는 원래 절에서 땅이나 돈, 곡식을 밑천삼아 수요자에게 대부하여 거기서 이윤을 남겨 불교 행사나 공익 사업을 벌이는 불교신용조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후대에 이르러 고리 대금업으로 변질되어.. 2024. 5. 23.
불교인물사(25) - 수선결사와 보조국사 지눌(1) - 고려 불교의 문제점(1) 이번 시간부터는 고려 시대 수선 결사를 이끈보조국사 지눌 스님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상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시대는 고려 시대입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부처님의 은덕으로 고려를 건국하였다고 하여 불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태조 왕건 후대의 왕들도 불교를 숭상하면서 불공을 드리고,수많은 절을 세우면서 불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쳐 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고려 불교는 외관적으로는 발달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어둠과 부패가 함께 공존했습니다.  빛이 밝으면 어둠이 깊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요. 불교의 융성의 이면에 권력과 연계되고, 세속화된 불교의 어둠과 부패가 드러났던 시대가 고려 시대입니다.  고려 시대를 빛낸 선지식인 보조 국사 지눌(1158~1210)은 고려 중기.. 2024.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