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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역사57

불교의 역사(5) - 아쇼카 대왕의 발심 1. 인도의 전륜성왕, 아쇼카왕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 3대 왕이었던 아쇼카 왕(Asoka, BC274-237)은 인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하고, 불법을 기반 이념으로 통치를 펼쳤던 불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호법왕이자 전법자 중의 한 분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약 150년후 서북 인도(오늘날 파키스탄 지방)는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받게 되어 그 지배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스의 서북인도 지배에 항거하여 이들을 물리치고 북부 인도를 통일한 분이 바로 아쇼카 대왕의 할아버지인 마가다국 왕자 출신의 찬드라 굽타입니다. 찬드라 굽타는 북부 인도를 통일한 후 마우리아 왕조라는 인도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웠습니다. 아쇼카 왕은 이슬람 무굴 왕조의 악바르 대제와 인도의 영국식민에 항거한 비폭력의 성자.. 2023. 11. 10.
불교의 역사(4) - 제2결집과 근본 분열 1. 계율의 논쟁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100년이 지나자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는 생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1결집에서 제정된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도 이제는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여러 세대를 거쳐 전달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사회적 변화나 지역적 차이에 의해 계율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고, 부처님의 교설에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수행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도 갠지스강 동부의 큰 상업도시인 바이샬리에서 계율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갠지즈강 서쪽 지방에 살고 있던 "야사"라는 장로 스님(나이가 많고 덕망 높은 스님)이 바이샬리에 와 보니 바이샬리의 젊고 진보적인 승려들은 10가지 계율의 내용에 대해 상당히 융통성 있는 해석을 내리고 실천하고.. 2023. 11. 8.
불교의 역사(3) - 바이샤와 크샤트리아 계급의 불교 귀의 1. 불교 교단의 확장 부처님 열반 후 약 100년간은 불교 교단에 대한 특별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불교 교단은 북인도의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었지만, 통일된 중앙 기관이나 횡적인 연결 기관도 없었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구심점을 잃었기 때문에 교단의 분열과 함께 악의적인 외부인들로 인한 분란으로 불교 교단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위험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입멸 후 100년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직계 제자들과 그 아랫 제자들이 부처님의 유훈을 받들어 잘 화합하고 수행하며 불교 교단을 확장해나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실 때 특별히 후계자를 지명하여 교단을 운영할 것을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1결집에서 가섭 존자와 아난 존자, 우팔리 존자의 세 분의 제.. 2023. 11. 6.
불교의 역사(2) - 경전과 계율의 결집 1. 결집의 동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불교 교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처님의 상수(으뜸) 제자였던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섭 존자, 아난 존자, 아나율 존자, 우파리 존자, 라훌라 존자 등은 생존해 계시며 교단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분은 두타제일 가섭 존자였습니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 열반 당시 다른 곳에서 포교 중이었기 때문에 쿠시나가라에는 없었습니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 열반 소식을 듣고 쿠시나가라로 달려왔습니다. 쿠시나라가의 모든 부처님 제자들은 모두 비탄에 잠겨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제자는 달랐습니다. 그는 슬퍼하는 다른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매일같이 '이렇게 수행.. 2023.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