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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사68

불교 인물사(18)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6) - 법성게(1) 1. 의 가치 의상 대사는 원효 대사처럼 방대한 저술을 거의 남기지는 않았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출가자로서 계율을 지키고 본분을 다하는 모습, 선묘의 헌신적인 사랑의 전설 등의 훌륭한 스토리도 있지만,, 흔히 라고 불리는 210자의 짧은 게송에서 품어져나오는 내공의 위력 때문입니다. 의상 대사는 중국의 법장이나 일본의 명혜와 같은 화엄학의 대석학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고,우리 나라에서 화엄경과 관련하여 "해동 화엄의 초조"라고 불릴 정도로 화엄의 대가입니다. 화엄경은 60권 화엄 또는 80권 화엄으로 그 분량이 방대합니다. 그런데, 는 이 화엄경의 사상을 의상 대사의 각성을 바탕으로 단 210자의 짧은 게송으로 압축하여 간결화시킨 것입니다. 는 의상.. 2024. 4. 26.
불교 인물사(17)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5) - 부석사 1. 부석의 전설 선묘의 도움으로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온 의상 대사는 화엄10찰을 짓고 화엄 불교를 깊이 선양하였는데, 그 후에도 선묘는 의상 대사를 계속해서 도왔다고 전합니다. 의상 대사가 소백산 자락에 영주 부석사를 창건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석사를 지을 절터에는 산적과 같은 부랑자들이 많아 절을 짓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선묘가 신통으로 큰 바위를 마치 비행 접시처럼 만들어 부랑자들 위로 돌게 하자 그들이 모두 도망가서 그 자리에 부석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붙쳐진 절 이름이 부석사(浮石寺)입니다. 부석사는 '선묘 보살이 돌(바위)을 뜨게 한 절'이라는 뜻입니다. 2. 부석사 석룡이 되어 법을 듣는 선묘 부석사를 창건한 뒤에도 선묘는 석룡(石龍)이 되어 절을 수호했을 뿐.. 2024. 4. 23.
불교 인물사(16)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4) - 사랑 1. 선묘의 사랑 의상 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묘(善妙)와의 사랑입니다. 661년 의상 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위해 뱃길을 떠났을 때 도착한 항구는 중국 산동 반도 북쪽의 등주라는 항구였습니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에 도착한 후 가벼운 병에 걸려 등주에서 신심이 깊은 유지인(劉智仁)이라는 한 독실한 불교 신도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유지인에게는 선묘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의상 대사를 보고 반해서 의상 대사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묘가 의상 대사를 모시겠다고 아버지께 그 뜻을 말씀드렸습니다. 유씨는 난처했지만 의상 대사에게 그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도열에 불타던 의상 대사는 자신은 출가한 승려로서 불법을 구하기 위해 당나라까지 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음과 같이.. 2024. 4. 19.
불교 인물사(16) - 해동화엄의 초조, 의상 대사(3) - 신앙 1. 귀국 의상 대사는 중국 당나라 유학 10년만에 귀국합니다. 에서는 670년 의상 대사가 귀국한 것은 신라의 당군 축출에 분노하여 당나라가 대군을 일으키고 신라를 침략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의상 대사는 당시 당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김흠순(김유신 장군의 동생)의 요청에 따라 국난의 위급한 정보를 조국 신라에 알리기 위해서 귀국했다고 합니다. 의상 대사로부터 당나라의 침략 정보를 들은 신라 조정은 당나라에서 밀교 문두루 비법을 배운 명랑 법사로 하여금 경주 사천왕사에서 당나라 침략을 물리치는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명랑 법사는 신통한 도술로 적의 침략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하는데, 이 설화를 통해 의상 대사의 정보에 의해 적의 침략을 대비하여 적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 2024. 4. 13.